Published : 2012/04/21 23:57

아리안타임즈는 지난 4일 독자투고방식의 SS시스템 도입에 이어 금일부로 이란 및 독일 통신원들의 현지 소식을 생생하게 담은 통신원기고 코너를 신설하였습니다.
각 통신원들은 현지의 사회, 일상 등을 다룬 다채로운 이야기로 독자여러분을 찾아뵙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세계 각지의 통신원들과 함께 세계의 일상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합니다.
1회 통신원기고는 이란 테헤란에서 대학을 다니는 레이하네흐 통신원이 보내준 테헤란의 4월의 풍경입니다.
이 기사에 나오는 사진들은 본지 통신원이 직접 촬영, 송고한 사진들이므로 상업적 이용과 일체의 무단 이용을 금합니다.

테헤란 통신원 : 레이하네흐 / 번역 : 아리안타임즈



Salam!

며칠전 테헤란에는 우박을 동반한 큰 비가 내렸습니다.
흔히들 이란은 중동이기 때문에 건조한 기후로 알기 쉬운데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지역에 따라서 비도 많이 오고, 눈도 많이 오고 겨울철이 되면 테헤란시를 감싸고 있는 토찰산에 있는 스키장도 많이들 찾곤 하죠.

이란은 여타 중동국가와는 여러모로 다른점이 많답니다. 이슬람 중에서도 소수인 시아파가 다수라 수니파인 아랍국가와는 언어도 다르고, 역사도 다르고, 민족 역시 달라요. 아랍연맹에도 가입이 안되어 있답니다.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데다 영토도 넓다 보니 기후도 다양하게 나타난 답니다.
에..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이란은 동부 지중해성기후 그리고 서부 온대습윤기후.. 그렇다네요.

하여간, 이스파한이나 카스피해에 가까운 사리같은 곳은 물도 많고 숲도 많아서 중동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신 분은 직접 보시면 놀라실 거에요.  

특히 테헤란은 4월에는 비가 상당히 많이 내린답니다.
일주일에 적어도 3일정도는 소나기를 동반한 강우가 주룩주룩 내려, 처음 오신분들은 여기가 중동이 맞나 하는 생각도 드실꺼에요.
보통 비가 많이 내리는 4월에는 최저 14도에서 최고 24도 정도 기온이 나타나 가끔 호우가 내리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잠깐이지만 생활하기에는 딱 좋은 날씨죠.

이란 여성은 세계 화장품 소비량의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빅마켓의 주인공이죠.
기후가 건조하기도 하고 다른 나라 여성들은 몸매에 신경을 많이 쓰지만 저희는 종교적 제약때문에 얼굴에 많이 신경을 쓰기 때문이기도 해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4월의 테헤란에서는 우산을 항상 소지하지 않으면 낭패를 보실꺼에요>



전 여러나라를 많이 가보진 않았지만, 언제나 새로운 도시를 여행하거나 세계 지리를 공부하면 그 도시에 대한 이미지가 색상으로 머리속에 남더라구요.
예를 들면 로마는 흰색, 마드리드는 적색, 파리는 청색.. 사람마다 다 다를테지만 저는 그랬어요.
여러분들이 사는 한국의 서울에는 어떤 색이 어울릴까요?

저는 테헤란에서 나고 자랐어요.
그리고 지금은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있구요.
어릴때 부모님을 따라 테헤란의 여러 공원을 다녀서 그런지 제게 테헤란은 녹색의 이미지였어요.

사실 녹색은 이란과 친숙한 색이에요. 국기에도 있고, 이란 국가 대표팀 주 색상도 녹색이죠.
한국에선 야구가 인기가 많다고 하는데 저는 이름만 들어보았어요.
왜 이란에서는 야구가 인기가 없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아리안 타임즈를 통해서 이란 혼혈 선수가 아시아에서 돈을 제일 많이 버는 야구 선수라는 얘기를 전해 들었을 때는 정말 놀라기도 했구요.
전 개인적으로는 배구를 좋아하지만 이란에서는 역시 축구가 인기가 좋긴해요.
이란에서는 여성의 경기장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요. 그래서 언젠가 한국에 가면 야구경기장에 가보고 싶네요.


부모님과 친척 어른들께 들은 얘기로는 원래 테헤란은 녹색과 회색의 이미지가 아닌 형형색색의 밝고 명랑한 색채였데요.
제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이슬람혁명이 발생하고 왕정이 몰락한 후에 테헤란의 무지개색은 사라지고, 흰색과 회색 그리고 녹색만 남은 듯 하네요.

특히 이란-이라크 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전사자들의 이름이 거리의 이름이 되었어요.
그래서 전쟁에서 가족을 잃거나 자식을 잃은 사람들에게 이 도시는 존재 자체가 거대한 무덤처럼 느껴지기도 한답니다.

제 전공이 건축이다 보니 그때부턴 다른 관점으로 제 도시를 바라보게 되고 그 이름들을 자주 접하게 되었죠.
그때부터 저에게 떠오르는 테헤란의 색상은 더이상 녹색이 아닌 회색이 되었어요.

또 현 정부에 반대하는 단체의 운동을 녹색운동이라고 하는데요.
그 단체에도 여러 갈래가 있어요. 이에 관한 얘기는 다음에 한번 해볼께요.
어쨌든 저도 녹색운동의 지지자에요.
많은 서민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버린 물가와 종교적인 제약 때문에 현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녹색운동에 참가하지만, 제게는 회색이 된 도시 테헤란을 예전의 녹색으로 돌려놓는다는 뜻을 담고 있는것 같이 느껴져서 더욱 가치있는 일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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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가족들로 붐비는 공원인데 오색풍선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네요>


요 며칠은 폭우가 와서 도시가 더욱 잿빛으로 변한 느낌이 드네요.
우박까지 내릴 때는 빗물과 얼음, 나무와 흙, 도시의 시멘트가 한데 어울려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언젠가 뉴스에서 테헤란이 세계 여행 배낭객들에게 제일 멋없는 수도로 뽑히기도 했다죠?
섭섭하기도 했지만 더 자세히 알고보면 매력있는 곳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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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화가인데 집중호우가 내릴 때는 인적이 드물어 집니다>




책장에 있는 가족 앨범에서 부모님의 연애시절 사진을 보면 가끔 애잔한 마음이 들어 센치해질 때도 있지만, 전 그래도 우리 이란을 사랑하고 테헤란에서 계속 살고 싶어요.
테헤란에는 배울게 너무나 많기 때문이죠. 테헤란의 나무와 길 그리고 사원은 그 자체로 시대와 역사를 담고 있고 테헤란의 모든 이들이 제 선생님이랍니다.
전 건축을 공부하는 만큼, 제 도시의 새로운 건축물의 디자인을 해보고 싶어요. 물론 여자이기에 제약은 있겠지만 그래도 제가 그 시작점이 되고자 하는 꿈이 있습니다.


일단 지금 실천할 수 있는 일부터 하려고 합니다.
사실 이런 테헤란의 모습을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우리 이란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고 진실을 밝히는 일도 해보고 싶었어요.
그것이 아리안타임즈의 통신원이 된 이유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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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이런 우박이 내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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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발은 제발이 아니라 제 친한 친구의 발이에요>



비내리는 테헤란 거리 몇장과 감상기라 아쉬우실꺼에요.
사실 사람들이 많은데 카메라를 불쑥들이미는건 여자인 저로서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어요. 하하하
특히 허락없이 여성을 찍거나 하는건 예의가 아니거든요.

앞으로는 더욱 충실한 이란 현지소식과 여행기도 한번 올려볼게요.
그럼 모든 분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빌어요.
[##_kaAmo_##]

2012/04/21 23:57 2012/04/21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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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ess  Modify  Reply 유동현 2012/04/22 12:15

    가보고 싶어지네요

  2.  Address  Modify  Reply 빈구루마 2012/04/22 14:11

    군시절 해군 순항 훈련대원으로 1975년 11월, 일주일간 이란 아바단을 방문 했었습니다.짧은 시간이었지만 좋은장면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공공장소 마다 걸려있던 샤(팔레비왕)의 대형 초상화,짧은 스커트에 서구식 으로 멋을내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인들,흥청거리던 선술집들,거리 곳곳에 노상에서 리어커 위에 즉석 양고기 구이를 파는상인,어느 가정집의 아담하게 녹색이 우거진 정원,나중에 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극장,정유공장... 기자님 이야기대로 다른 중동국가와는 기후가 좀 달랐다는 것도 생각납니다.혁명과 체제변화를 지나며 종종 뉴스에 나오는 히잡차림 이란 여인을 보면 혁명전 샤의 초상화와 짧은 스커트의 여인 모습이 떠오르고.기자님 덕분에 잠깐 옛기억 더듬어 봤습니다.혹 기자님도 평상시 히잡 차림 이십니까?

    •  Address  Modify 러시아정교도 2012/04/22 19:47

      휴.. 1975년에 군인이셨으면 어르신이시네요.
      그 시절 이야기 요즘 젊은이들은 잘 모를텐데.. 그당시 보고듣고느끼셨던 이란얘기좀 많이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3.  Address  Modify  Reply 빈구루마 2012/04/24 15:51

    어느새 나이는 먹었지만 감성은 27세 정도입니다.그래서 여러분들 공간에 주책스럽게 기웃거립니다.마침 무역회사 대중동 수출부서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할때 회교혁명이 발발하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해상운송이 불능케되어 대륙철도로 주문품 운송 하기도하고,수출대금 추심도 힘들게 하기도 하고,그러면서 이란 정세추이에 시시각각 신경을 썼지요.왜냐면 중동국가중 대이란 물량이 제일 컷고 또 시장잠재력이 막대했고요.그때 다른회사 주재원들은 다 철수했는데 우리회사 주재원 단신 홀로남아서 본사로 상황보고를 해오는게 마치 적진에 침투한 아군 특공대원 같았습니다....그후 지금까지 회교 근본주의에 기반한 신정정치가 계속되는거로 보입니다.지금 글쓰면서 생각해봅니다.이란혁명의 당위성은 무엇일까?반서구,반미,반기독교,반유대,잘 모르겠습니다.따로 자료찾아보고 공부좀 해야겠습니다.

  4.  Address  Modify  Reply 예쁜이 2012/06/18 23:23

    저도 이란 특히 수도 테헤란에 방문한다면 특히 혁명전 서구적인삶을 사셨던 당시 이란어르신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고싶어요~! 그리고 테헤란시에 있는 유명맛집도 찾아가서 케밥이랑 피자 햄버거를 맘껏먹고싶겠지만 제가 현재 당뇨라서 그렇게 못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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