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blished : 2012/05/10 23:59
독일예술과학국가상(Deutscher Nationalpreis für Kunst und Wissenschaft, 영 German National Prize for Art and Science)은 노벨상에 대항하기 위해 1937년 제3제국에서 창설된 상이다.
1935년 노벨상 수상자인 카를 폰 오시에츠키(Carl von Ossietzky)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항의하기 위해 제정된 본 상은 총 9명의 인물에게만 수여된 제3제국 최고 권위의 상이다.
1차세계대전 기간 동안 반전운동을 주도하던 저널리스트이자 평화주의자였던 카를 폰 오시에츠키는 이후 민주주의, 페미니즘, 사회주의 원칙 하에 활발한 저술언론활동을 펼쳤다. 1932년에는 공산당 후보였던 에른스트 텔만(Ernst Thälmann)의 대선운동을 지원할 정도로 공산주의와 관계를 맺었다.

죄수번호 562번 카를 폰 오시에츠키
독일의 영토와 권리를 침해하며 독일에 대한 보복을 골자로 한 베르사이유조약에 대해 독일국민 모두는 반감을 표시하였고, 유약함의 대명사 바이마르 정권마저도 연합국 승전국들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궁극적으로 전쟁배상금과 굴욕적조항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였으며 독일군부는 자주권을 위해 비밀리에 재무장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1931년 오시에츠키는 독일의 반 베르사이유적 움직임을 폭로하게 된다. 주된 내용은 독일이 베르사이유조약을 위반하고 있으며, 독일군부가 소련과의 밀약 하에 비행 및 전차기동훈련을 실시하였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으로 오시에츠키는 바이마르 정권 하에서 반역 및 간첩혐의로 기소되어 18개월형을 선고받는다.
이같은 행위는 명백한 반국가적 좌파의 반역행위로 1992년 독일연방법원에 의해 이같은 결정이 재확인되었다.
1933년 1월 아돌프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NSDAP)이 집권하자 오시에츠키는 반정부운동을 더욱 거세게 선동하였다.
수권법 통과 이후 게쉬타포에 의해 사상범으로 체포된 오시에츠키는 수용소에 수감되였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서구열강의 여론이 조성되고 결국 1935년 노벨위원회로부터 노벨평화상이 결정되었다.
수용소 수감 중에 수상이 결정되어 상을 받지는 못했으나 질병을 이유로 풀려난 후 방문하여 1936년 또다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나찌정부는 반역자에 대한 노벨평화상 수상결정은 명백한 국권침탈이자 내정간섭이라 규정하고 독일인의 노벨상 수상을 금지하였다. 이후 독일정부는 노르웨이 점령 직후 오시에츠키의 수상을 결정한 노벨평화상위원들을 전격 체포하기도 하였다.
독일예술과학국가상은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하게 되었다.
독일인의 노벨상 수상이 금지된 상황에서 이를 대신할 상이 필요하게 되었던 것이다.

독일예술과학국가상 펜던트
독일예술과학국가상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펜던트 형태로 제작되었으며 수상자에게는 메달과 상패 이외에 10만 제국마르크의 상금이 수여되었다.
제3제국 기간 동안 총 9명의 수상자를 배출하였으며, 1937년, 1938년 두번에 걸쳐 수상이 발표되었고, 시상식은 각 이듬해 1월 30일 정권획득기념일을 맞아 총리관저에서 거행되었다.
. 1937년 9월 7일 수상자 발표(1938년 1월 30일 시상)
1. 건축가 파울 루트비히 트로스트(사후 시상)

Paul Ludwig Troost
2. 나찌당대외정책제국지도자 알프레트 로젠베르크

Alfred Rosenberg
3. 남극탐험가 빌헬름 필히너

Wilhelm Filchner
4. 의사 아우구스트 비어, 페르디난트 자우어브루흐
![]() August Bier | ![]() Ferdinand Sauerbruch |
. 1938년 9월 6일 수상자 발표(1939년 1월 30일 시상)
1. 토트조직 대표이자 건설가 프리츠 토트

Fritz Todt
2. 자동차기술자 페르디난트 포르쉐

Ferdinand Porsche
3. 항공기술자 빌헬름 메서슈미트, 에른스트 하인켈
![]() Wilhelm Emil Messerschmitt | ![]() Ernst Heink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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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사들 잘보고 있는 애독자입니다. 한가지 궁금한게 있는데 92년 오시에츠키의 독일법원에 의해 반역행위가 재확인되었다는 사실이 상당히 흥미롭네요. 그가 군생활을 할 당시에 폭로한게 아니며 언론인으로서 기고인 점이 더욱 그러하네요. 혹 군대있을때 비밀유지서약같은걸 했던건가요? 혹시 자세한 내용 아시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군조직이나 비밀유지각서같은 것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본문에 연방법원판결내용을 보충하였습니다. 오시에츠키는 반체제민간인이었습니다. 이건 상식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불법적이고 굴욕적인 조약에 맞선 단지 자위권 확보차원의 정부움직임을 적국 또는 미래의 적국에게 폭로했습니다. 당연히 서구열강은 기특해했고 인권민주원리주의자들은 환영했습니다. 이같은 행위로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오시에츠키는 류사오보, 아웅산수치 등이 기사화될 때(노벨평화상 결석수상자)마다 덩달아 등장하는 세계평화와 민주주의의 수호자처럼 비춰지지만, 실상은 반역자에 간첩입니다.
게다가 인류역사상 절대악의 상징처럼 조작된 나찌의 박해를 당했다는 것도 벼슬로 작용하면서 오시에츠키가 절대선이라는 편견에 의문의 여지를 없앴던 것입니다.
먼저 상세한 부연설명 감사드립니다. 판결문을 읽어보니 어느정도 수긍이 가는 측면도 있지만, 제가 많이 모르는 사실들 많은가보다 싶네요. 제 역사의식, 이렇게 말하기도 웃기긴 하지만 보통 접하게 되는 언론매체와 영화등에서 길들여져 굳어진 나치와 2차대전에 대한 이미지는 절대악이며, 그러한 것들이 제가 저런 물음을 던진것 같습니다. 독일국내에서도 나치를 악으로 구분하고 있을거란 멋모르는 짐작이 있었고 그것에 정면으로 대치되는듯한 판결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약간 혼란스럽네요. 저같은 독자들이 또 있을듯한데 궁금증을 풀어줄 기사들을 기대해봐도 괜찮을까요?
독일내에서는 주변국들을 의식해서 그 어느 나라보다도 나찌를 절대악으로 규정하면서 호들갑떨지만 엄연한 반역행위였기에 나찌정권의 손을 들었나보네요
지난기사 찾아보니 독일역사관련 많은 칼럼들이 있군요. 찬찬히 읽어봐야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기사 부탁드립니다.
2차세계대전은 정말 많은 이야기가 있는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 전쟁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 까지 언플의 힘은 대단한것같습니다.
독일의 2차세계대전 패전이후,아마도 연합국들의 자존심이 사정없이 금이간 모양입니다.
1차 전쟁이 종결된지 오래지 않아 발발된 전쟁이라 다들 독일을 만만하게 판단해서
독-폴 전쟁을 독일 먹어치우기 전쟁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오히러 파죽지세로
참패를 당하니 그 억울한 마음이 이루 말할데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소련과 연합할정도로요...2차 세계대전이후 연합국들은 독일을 악의 소굴,절대악으로
온갖 포장을 하여 부풀려 알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꾸며야 전쟁 발발의 원인인 부당한 무력이권취득과
밀린것이 자신들의 허접스러움을 감출수 있고 그 핑계를 독일의
극악무도한 야욕으로 인한것으로 인식시킬수 있기 때문이라봅니다.
그래서 연합국들의 합의하에 거의 모든 매체를 통해 그걸 접하는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오랫동안 세뇌각인을 시킨듯하네요.
제 기억속의 2차세계대전은 1차대전패망후 보상을 못하겠다고 배째라고
독일에서 먼저 그냥 쳐들어갔음 정도로 이미지였으니깐요.
그리고 세계정복이라는 야욕으로 온갖 비인도적인 짓을 행했다.
뭐,이런 이미지죠.영화나 만화로인한 영향이 무척 크다고 봅니다.
특히,미국은 독일,소련,러시아,쿠바,아랍,중동,남미,동남아,중국,북한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에게 반하는 세력이나 국가에대해 영화나 만화등 미디어를
통해 지속적으로 악의 세력으로 간주하여 세뇌 작업을 하였고 하고 있죠.
그러다보니 역사의식이나 판단능력이 저하되어 갈수록 미디어를 통해
접한 사실을 접목시킨 거짓을 마치 역사적 진실이라고 믿게되는것 같아요.
유난히 그당시의 독일의 악행,당한자의 고통이 요목조목 참 사소한 부분까지
디테일하게 알려진것 보면 목적이 분명하고 의도적인게 느껴지네요.
따지고 보면 대항해시대의 열강들의 행태가 2차대전당시의 독일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마치 모험가 정신이 가득한 용자들처럼 묘사되고
그당시 부정적인 면들은 마치 ~~카더라 통신이나 괴담같이 흘러가고
양육강식이 당연한듯 하여 당한 나라들이 오히려 바보 라는 이미지를 만들었죠.
열강들은 위대한 나라 ~ 뭐 이런 ㅎㅎ 다같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기에
그때의 부정적인 면은 알면서도 서로 서로 고개를 돌렸지만.
2차대전은 독일이라는 먹이감한테 오히려 물려버린 격이라 자기들의
추잡함을 감추기 위해 심하게 과장을 섞어버린듯 합니다.
그래서 정작 독일인들 조차 그 말에 고개 숙이는.
열강들중 독일을 향해 돌을 던질수 있는 나라가 과연 있을까 하네요.
오히려 더 심할텐데 ㅋ
역시 전쟁은 승자들의 잔치인 모양입니다.
(독일과 일본을 동일하게 보는 바보들이 있는데 ㅎㅎ 독-폴 전쟁의 발발의
원인과 이것이 세계대전으로 확산된 원인이랑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원인과 의도는
확연히 다릅니다.필요에 의해 전쟁중 독-일 연합이 이루어 진거고요)
당시 독일의 경우 1차대전 패배후 패전국으로 부담해야했던 비용이 지나치게 과했던것도 사실이고 (어쩔수 없던 부분도 있었지만)그것과 별도로 국토의 무력침탈에 대한 자국력 회복을 위한
움직임 << 이것은 연합국을 상대로 다시 한번 전쟁을 일으키자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이것을 타국에 사방팔방 알리고 다닌건 그자체만으로 보면 매국에 간첩질이 분명하죠.
또 이를 두고 노벨평화상이라니요 ㅎㅎ 광대노름이 따로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