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blished : 2012/05/22 23:59


살롱키티(Salon Kitty)는 SS산하 보안방첩부(SD : Sicherheitsdienst)가 독일고위층과 외교관 등을 상대로 첩보를 얻기위한 목적으로 설립한 고급룸살롱이다. 위치는 베를린 기제브레히트 11번가(11 Giesebrecht Strasse)로 현재도 그 모습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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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키티의 현재 모습



살롱키티를 첩보수집 목적으로 활용하자는 계획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Reinhard Heydrich)가 입안하여 기획하였고, SD의 수장인 발터 쉘렌베르크(Walter Schellenberg)가 전체적인 운영을 관리하였다. 업소명인 살롱키티는 룸살롱의 마담인 키티 슈미트(Kitty Schmidt)의 이름을 따서 작명하였다.
업계의 실력자 키티 슈미트는 나찌 집권 이후 독일을 떠나는 난민을 통해 영국은행에 돈을 예치하고 있었다. 나찌정권에 호의적이지 않았던 슈미트는 마르크화의 해외유출을 통해 독일을 떠날 궁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구열강과 독일간 긴장상태가 조성되자 1939년 6월 슈미트는 드디어 해외 도피를 결심한다.
그러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던 보안방첩부요원에 의해 네델란드 국경 인근에서 체포당하고 슈미트는 게슈타포 본부로 압송당하는 신세에 처하게 되었다.
취조실에서 발터 쉘렌베르크는 슈미트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수용소냐 협력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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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키티의 마담 키티 슈미트의 젊은 시절로 추정되는 사진


살롱키티는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하이드리히는 야심가였다.
보안방첩부와 게슈타포를 통합운영하는 제국보안본부장이 된 후 점령지 총독자리까지 권력을 확대하고자 했던 하이드리히에게는 두가지 약점이 있었다.

하나는 해군장교시절 불미스런 사건에 연루되어 군복을 벗었던 일이다.
그 사건에 대해서는 횡령, 혼빙, 성폭행 등등 여러 의혹이 난무하지만, 하이드리히가 제국보안본부(RSHA)장이 되면서 관련 기록을 말소시켰기 때문에 아무도 구체적인 진상은 알 수 없게 되었다. 당시 군법재판 재판관이었던 에리히 라에더 제독과 군사정보국 빌헬름 카나리스 제독은 실상을 알고 있었지만, 제3제국 정보기관 내 알력으로 인해 증언되지는 않았다.

또 하나는 하이드리히의 조모가 유태인이라는 설이었다.
친위대 게다가 제국보안본부장에게 유태인의 피가 흐른다는 설은 그것이 낭설이라 하더라도 대단히 치명적일 수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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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제국의 보안을 책임지던 하이드리히



당시 제3제국의 정보기관은 크게 두가지로 운영되고 있었다.
국방군에서 운영하던 군사정보국 아프베어(Abwehr)와 친위대에서 운영하던 제국보안본부(RSHA)였다.
두 기관은 국가의 정보와 관련된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팽팽한 파워게임을 지속하고 있었다.
해군이 주축이 되어 구성된 군사정보국과 해군출신 하이드리히가 이끄는 친위대의 정보기관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내부의 미묘한 긴장이 흐르는 상태였다.
군사정보국의 카나리스는 하이드리히의 개인적인 약점을 쥐고 있었고, 하이드리히는 군사정보국이 연합국과 내통하고 있다는 반역음모의 증거를 쥐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긴장상태가 상당기간 지속될 수 있었고, 이같은 상황은 군사정보국의 실세들이 제거되는 1944년 7월 20일, 히틀러암살미수사건까지 계속되었다.

제국보안본부는 다양한 루트를 통해 국내외의 정보를 취득하고 있었지만, 고위층의 사생활과 관련된 첩보 또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었다.
하이드리히는 자신의 약점을 보호하고, 경쟁자를 견제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고 이것이 살롱키티 존재의 이유였다.


보안방첩부는 룸 도처에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이를 모니터링하기 위해 지하실에 녹음시설과 기록실을 완비하였다.
그리고 베를린 각지의 유명한 '아가씨'들이 선발되어 첩보여부선별능력에 대한 교육 및 군복, 계급장, 관등성명 식별 트레이닝이 행해졌다.
훈련된 미녀들은 고객을 접대한 후에 일정양식의 레포트를 제출해야 했으나, 도청장치와 지하실의 존재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를 얻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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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로 훈련된 제국의 업소녀



만반의 준비를 마친 1940년 3월, 미녀 첩보국 살롱키티가 개장하였다.
외교관과 군관계자, 고위 관료를 주고객으로 본격적인 첩보활동이 시작되었다.
베를린 최고의 미녀 20명이 대기하는 제국최고의 업소 살롱키티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무솔리니의 사위인 갈레아노 치아노(Galeazzo Ciano) 이탈리아 외무장관은 독일 방문 시마다 들렀고, 밝히기로 소문난 무장친위대 사령관 제프 디트리히, 문화계인사들과의 술접대가 잦았던 국민계몽선전부 장관 요제프 괴벨스(Joseph Goebbels) 등이 주고객이었다.
치아노는 실제로 국가사회주의적 인간형에서 벗어난 것으로 판단되던 요주의인물이었고 실제로 전쟁말기에 반역죄로 처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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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아노 치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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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 괴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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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디트리히

<단골손님>


그러나, 살롱키티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미녀들의 미모가 너무 눈부셔서 그랬는지 업소에 찾아온 주요인사들은 첩보가 될만한 비즈니스 발언은 거의  하지 않았고, 그저 미녀들과 데이트만 즐기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실제로 엄청난 분량의 레포트가 작성되었지만, 첩보로써의 가치가 있던 것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손님은 급감하였고, 설상가상으로 1942년 7월 폭격을 맞기도 하였다.
발터 쉘렌베르크는 1942년에 프로젝트 철수를 결정하였고, 비밀유지를 전제로 운영권은 키티 슈미트에게 이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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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키티 내부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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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장같은 아늑한 분위기



마담 키티 슈미트는 종전 후에도 첩보수집 목적의 살롱키티와 관련된 일체의 증언을 거부하면서 약속을 지키다가 1954년 사망하였다.

20명의 미녀들은 보안방첩부가 철수한 이후에도 떠나지 않고 키티 슈미트와 계속해서 업소를 지켰다.

살롱키티의 기획자인 하이드리히는 체코총독에 부임한 후, 1942년 6월 4일 영국의 사주를 받은 체코 테러리스트에 의해 사망하였다.

살롱키티의 실질적인 관리자인 발터 쉘렌베르크는 종전 후 전범재판에 회부되어 모든 전말을 증언하였다. 1949년 6년형을 받고 복역 중 1951년 질병으로 석방된 이듬해 3월 31일 암으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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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 샤넬과도 염문을 뿌렸던 플레이보이 발터 쉘렌베르크



살롱키티는 키티 슈미트 사후에도 삼대에 걸쳐 운영되다가 1992년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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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의 키티 슈미트와 2대 마담인 그녀의 딸



1976년, 살롱키티는 에로물의 거장 틴토 브라스에 의해 동명영화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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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틴토 브라스의 영화와 마찬가지로 사회성이나 정치색은 없는 끈적한 에로물이라는 평이 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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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2 23:59 2012/05/22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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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ess  Modify  Reply 이단 2012/05/26 14:36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한스도이체님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요즘 슈라 단찌히 님의 글이 도통 올라오지 않는군요..

    혹시 무슨 이유라도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슈라 단찌히님 말씀대로라면 연재되어야 할 칼럼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너무 오랫동안 칼럼이 올라오지 않으니 매우 궁금하고 답답한 느낌이 듭니다..ㅠ

    혹시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건인지요...???

    •  Address  Modify 고도리 2012/07/23 10:41

      저도 궁금하네요 사정이 있어서 연재를 중단한다던가 뭐 그런 말도 없고 즐겨찾기 해놓고 꾸준히 눈팅 하다보니 시간이 많이 흘러 이미 결과까지 나온 시점인데

    •  Address  Modify 달리자 2012/07/24 22:38

      슈라 단치히님 블로그 운영중이세요.

      http://blog.naver.com/gode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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