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일, 아리안 소사
Published : 2012/01/04 17:06
1904년
발터 헤벨 출생
발터 헤벨(Walther Hewel, 2 January 1904 – 2 May 1945)은 나찌당 초기멤버로 외교관을 지냈으며, 총통과 오랜기간 개인적인 친분을 쌓아온 몇안되는 측근 중 한명이다. 1904년 중산층가정에서 태어난 헤벨은 10대소년시절 나찌당에 입당하게 되고 1923년 명문 뮌헨공과대학에 입학한 대학새내기 시절 뮌헨구데타에 참가한다. 구데타 실패 이후 히틀러와 같은 란츠베르크 감옥에 수감된 헤벨은 히틀러를 가까이서 모시며 친분을 쌓게된다.
출소 후 인도네시아에서 커피무역에 종사하면서 동남아지역에 나찌당해외지부를 설립하는 등 해외업무에 종사하던 헤벨은 이후 독일외교부와 정보부의 요원으로 활약하게 되고 1938년, 히틀러의 호출로 공식적인 외교관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나찌집권 기간동안 주로 외무장관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와의 연락대사로 활동하였으며, 친절하고 사려깊은 성격덕분에 대사업무 이외에도 히틀러의 주변에서 군부와 관료, 사령부 내 측근들 사이의 관계조율 등 비공식적인 조정업무를 담당하기도 하였다. 헤벨은 히틀러의 개인적인 대화상대이기도 하였고 다소 엉뚱한 스타일인 상관 리펜트로프의 성대모사에도 뛰어나 흉내와 성대모사를 좋아하는 히틀러를 자주 즐겁게 해주었다. 밝은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숫기가 없던 헤벨을 위해 평소에도 남녀를 짝지어주기를 좋아하던 히틀러는 여러차례 중매를 서서 결국 1944년 헤벨을 결혼시킨다.
1945년 4월 패색이 짙어지자 측근들 대부분이 베를린벙커를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헤벨은 끝까지 벙커를 지키며 히틀러와 마지막 시간을 보낸다.
4월 30일 총통 자살 이후 빌헬름 몽케가 이끄는 탈출조에 합류하여 이동 중에 소련군에 포위된다. 투항하자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으나 헤벨은 항복을 거부하며 히틀러와 같은 방식으로 자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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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동부전선, 코카서스에서 대규모 철수를 개시. 혹한기 이후 반격을 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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