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1일, 아리안 소사
분류 :
아리안역사
Published : 2012/02/10 18:27
1934
트로스트 사망
파울 루트비히 트로스트(Paul Ludwig Troost, August 17 1878 – January 21 1934)는 엘버펠트에서 태어나 주로 뮌헨에서 활동한 독일의 대표적인 건축가이다.

<나찌의 1대 건축가 파울 루트비히 트로스트>
다름슈타트 공대에서 건축학을 공부한 그는 1912년~1929년 노르트도이치 로이트 내부 장식 등으로 이름을 알리고 1929년 히틀러와 인연을 맺는다. 미술과 건축에 관심이 많았던 아돌프 히틀러는 당시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지에 유행하던 미래파, 입체파, 청기사파, 다다이즘 등의 현대미술을 독일정신을 좀먹는 퇴폐적인 미술로 평가하였고, 건축 역시 바우하우스와 같은 현대건축스타일 대신 고전주의적 건축양식을 선호하였다. 얄팍한 현대성보다는 신고전주의적 웅장함이 히틀러가 추구하는 국가주의적 세계관과 일치한다고 보고 건축에도 이러한 예술관을 도입하려 하였다.
트로스트는 이러한 히틀러의 건축관에 알맞는 인물이었고 당 공식건축가로 인정받아 1932년 '독일 예술의 집'을 기획하고 쾨니히스플라츠를 나찌당사로 조성하는 등의 사업을 맡아 진행하였다.

<뮌헨에 위치한 독일 예술의 집(Haus der Kunst)>
히틀러는 트로스트를 대단히 존경하여 건축에 관련한 스승으로 모셨으며, 트로스트와 대화할 때는 언제나 공손한 자세로 깍듯하게 모셨다.
1934년 트로스트가 병으로 사망하자 언제나 새로운 작품을 손꼽아 기대하던 히틀러는 크게 낙담하게 된다.
이후 33년 가을부터 트로스트의 조수로 일하던 알베르트 슈페어가 트로스트의 과업을 임시로 맡아 진행하게 된다.
트로스트가 죽은 후 슬픔에 잠겨있던 히틀러는 슈페어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트로스트의 후임자로 임명하게 된다.
이후 슈페어는 나찌당의 공식건축가, 군수장관으로 출세가도를 달린다.
트로스트 사후 나찌당원이었던 부인 게르디 트로스트는 남편의 건축사무실을 이어받아 운영하였고, 1935년 독일 예술의 집 대표부 일원 1938년 바바리아 영화사 예술자문단 등을 역임하였다. 그녀는 트로스트 사후에도 히틀러와 교류하며 친분관계를 유지하였다. 히틀러는 트로스트와 마찬가지로 미망인 게르디 트로스트에게도 경의를 표하였으며 1936년 트로스트를 기리기 위해 '독일예술과학국가상'을 수여하였다.

<1937년 오픈을 앞둔 독일 예술의 집을 방문한 아돌프 히틀러, 게르디 트로스트, 아돌프 지글러, 요제프 괴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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